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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31일 중앙일보기사중에서
이름 : 박병대비뇨기과
한국 불교의 유구한 전통인 선불교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조계종은 올해 역점 사업으로 선의 생활화·대중화·세계화를 꼽았다. 특히 서암·월하·덕암·청화·서옹 스님 등 대표적 선승들이 지난해 잇따라 입적하면서 뒤을 이을 스님에 대한 관심도커졌다. 한국 간화선(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의 큰 맥을 이어가고 있는 선지식을 찾아가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선지식(善知識)'은 불도를 깨치고 덕이 높아 사람을 불도에 들어가게 교화·선도하는 큰스님을 뜻한다.

편집자


지난 27일 항도 부산은 봄의 전령이 놀러온 듯했다. 강추위가 잠시 물러간 그날, 장수산 해운정사의 햇살은 제법 따뜻했다. 조실 진제(70)스님이 있는 소담한 방에 들어서니 지난해 12월 열반한 서옹 스님이 남긴 '수처작주(隨處作主·어디에 있든 내가 주인)'란 글귀가 눈에 띈다. 선불교의 당당한 자신감이 물씬 느껴졌다. 호탕한 성격의 진제 스님이 "잘 오셨습니다"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옹 스님과 인연이 각별하셨죠.

"나이는 20여년 차이가 나지만 서로 문답(問答)이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밤 12시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좋은 분이 가셨습니다."

-해운정사는 참선도량입니다. 그런데 시내 한복판에 있네요.

"1971년 창건 당시만 해도 이런 곳은 없었습니다. 대중 가운데 선을 포교하려고 이곳에 사찰을 세웠죠. 청명한 날에는 쓰시마섬도 보이지요. 부처님의 법문은 다름아니라 심성을 계발하는 겁니다. 사람마다 그것에 크게 눈을 뜨고 너와 네가 둘이 아닌 편안한 지상낙원을 이루자는 뜻이 컸습니다."

일상생활·세간살이가 참선

해운정사는 1년 열두달 참선하는 곳이다. 동안거 기간인 현재 30여명의 스님과 80여명의 일반인이 수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엔 일반인 대상의 철야정진도 열린다.

-아직도 중생에겐 참선이 어렵습니다.

"일상생활, 세간살이가 다 참선입니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하거나 항상 화두 하나를 갖고 정진하면,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끊지 않으면 밝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화두가 한자 투성이라 요즘 사람에겐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참나'라는 한글 화두를 많이 줍니다.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의 내 본모습이 뭔지 생각하라는 겁니다. 제가 출가 뒤 받았던 첫 화두지요."

-스님은 그것을 깨달으셨습니까.

"그래요, 그래.(하하하하하)"

-그게 뭐죠.

"우리 몸은 길어야 백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온세계가 한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닦고 닦으면 세상의 투쟁과 전쟁은 사라집니다. 사람들이 빈한하게 사는 건 지혜가 짧기 때문입니다. 말이 여위면 털만 길어집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참선에는 스승이 필요합니다. 간혹 혼자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스님은 올해 출가 50년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를 '할(喝·고막이 터질 정도의 고함소리)'과 '방(棒·몽둥이 찜질)'을 친구 삼아 수행해온 그는 이 같은 지혜를 갖추면 이른바 '출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했다. '참나'를 바로 알면, 즉 세상을 뚫는 지혜를 갖추면 국회의원도, 장관도,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선=출세? 잘 듣지 못했던 말이다.

-그래도 정치인은 욕만 먹는데요.

"아집과 욕망에 가려져있어 바른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50년 했다고 하지만 진정 '나를 비우는 정치'를 했다면 세계 민주주의의 종주국이 됐을 겁니다."

-4월 총선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과응보의 원리를 알아야 해요. 좋은 행동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고, 나쁜 행동에서 나쁜 결과가 나옵니다. 노인을 공경하고, 병든 자를 보살피고, 이런 게 선행입니다. 사업을 잘 해서 실업자를 줄이는 것도 선행이죠. 정치의 시작도 그런 마음을 세우고 실천하는 겁니다."

-노대통령을 어떻게 보십니까. 일부에선 '편가르기'를 비판합니다.

"대통령은 온국민의 대통령이 아닙니까. 내가 보건데 그간 신세진 일에 고루고루 인사치레를 했을 겁니다. 앞으론 넓은 시야를 가지고 그런 인사를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지켜봅시다."

스님은 이날 뜻밖에 현실 문제를 많이 언급했다. 예컨대 북한 핵에 강력 반대했다. 핵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 나아가 무생물까지도 몰살하는 엄청난 재앙을 부른다는 이유에서다.

'세상은 하나'알면 선행 가능

얘기는 다시 선(禪)으로 돌아갔다.

-불교에선 물질에 대한 욕망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물질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참선은 세상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수양에 몰두하면 자기 직업에도 성실해지고, 책임감도 강해집니다. 세상 전체가 한 몸뚱이라는 진리, 모든 인류가 부모·형제라는 사실에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베풀 줄도 알게 됩니다."

-'몸짱'이 유행입니다. 들어보셨죠. 외모가 실력인 세상입니다.

"형상은 허망합니다. 여기에 집착하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주가 생기기 전의 '참나'를 보라니까요. 내면을 바로 관찰하면 남자도 여자도,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시작도 마침도 없습니다."

-뜻이 통하는 지음자(知音者)를 기대한다고 자주 말하셨는데요.

"아직도, 그렇습니다. 박수를 치려면 두 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마주칠 손을 찾지 못했습니다. 시절 인연이겠지요."

-그렇게 자신이 있습니까.

"문답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하하하)"

-세상을 다 아신 모양입니다. 갈등이 없으니 심심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오히려 바쁘죠. 항상 산문을 열어놓고,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합니다. 묻는 사람도 많고, 가르칠 사람도 많아 항상 바쁩니다."

-그래도 외국에선 한국 불교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2년 전 국제무차선대법회를 열지 않았습니까. 결과적으로 한국 선불교의 저력을 만천하에 보였습니다. "

-그런 한국에 틱낫한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세계적 스님은 왜 없나요.

"그들 스님은 선의 진리를 모릅니다. 단지 자비의 보살행을 펼 뿐입니다. 맑은 가을 하늘처럼 하나의 티끌도 없는 부처님의 심인(心印·깨달음)은 참선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오면, 안목이 상통하는 이를 만나면, 무차선회 같은 자리를 다시 열 생각입니다."

저 멀리 청해(靑海)로부터 기운 센 바람이 불어왔다. 스님은 59년 오도송(悟道頌)에서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二間茅庵伸脚臥 海上淸風萬古新)"고 읊었다.

등록일 : 200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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