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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13척 vs 왜군133척, 10배 이상의 병력을 이순신은.
이름 : 박병대비뇨기과
조선13척 vs 왜군133척, 10배 이상의 병력을 이순신은 깨뜨렸다!



1. 들어가기 전에



각 나라마다 조국의 영웅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영웅들이 있다. 광개토대왕, 왕건, 세종대왕, 안중근 의사등 여러 인물이 있지만 그중에서 임진왜란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런 글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넣는다는 것은 좋진 못하지만, 내가 뽑는 최고의 '영웅' 의 한 사람이며 이순신과 비교할 만한 인물은 다섯손가락 이내라고 말하고 싶다.

흔히들 이순신이 단순히 바다에서 왜군을 대파한 인물로 안다. 물론 한국사람들이 꼽는 최고의 영웅중에 한 사람이지만, 이번에 쓰는 글로 단순히 바다에서 왜군을 격파한 장수가 아닌 임진왜란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업적과 전투에 대한 천재성을 여실히 드러내고자 한다.





2. '명랑해전'



시 기 : 1597년
장 소 : 진도 앞바다(올돌목)
교전국 : 조선(이순신), 일본(마다시)
결 과 : 조선승리(일본 전선 133척 중 31척 격침)



당시 원균이 100여척을 전선을 칠천량해전에서 잃어 도망치는 가운데 경상우수사 배설이 12척의 전선을 추스려 한산도로 도피시켰다. 이런 어려운 때에 온갖 모함과 옥살이로 고생한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많은 함선과 병력을 잃은 해군에게 조선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수군을 버리고 상륙하여 육전을 전개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수군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비록 13척뿐이지만, 자신은 죽지 않았으니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한다는 내용의 장계를 올리고 결전을 위해 우수영으로 기지를 옮겼다.

9월 15일 결전을 앞두고 이순신은 수하 장수들을 집합시킨 후,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을 각오로 임하면 살 수 있고 반드시 살려고 한다면 죽게된다 고 했고, 한 명이 길목을 지키게 되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고 했다(오자병법 치명편 -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卽生 幸生卽死)...

... 너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법으로 다스려 비록 작은 일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라 말하며 엄격히 각오를 다진다.

※ 올돌목(명랑)이란?
진도와 화원 반도 사이의 해협으로 가장 좁은 목은 약 330m이며 깊이는 약 1.9m에 불과하고 암초가 많고 썰물때는 조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밀물때는 그 반대방향이 되는 급류지대로서 워낙 조수의 흐름이 빨라서 마치 우는 소리를 내는 듯하다하여 명량, 즉 울돌목이라 불렸다.

9월 16일 결전의 날, 이순신은 전라우수영 묘박지로부터 울돌목을 향한 출전 명령을 내렸다. 북서 조류를 타고 왜선 133척은 명량입구까지 들어왔다. 이 두세력의 선박은 명랑입구에서 마주쳤고, 왜장 마다시는 조선선박 13척에 포위를 시도했다. 하지만 워낙에 좁은 명랑입구라 왜선 13척은 뒤를 이어 들어왔다.

이때 이순신은 조선전선을 불러들이는 '초요기'를 세우게했고 중군장인 김응함의 전선과 거제현령 안위의 전선이 왜선박을 향해 돌진했다. 왜장 마다시는 안위의 전선에 집중공격을 했고 안위는 숫적으로 워낙열세였다. 이순신은 안위를 구하기위해 나아가 왜선 3척을 격파하고 다른 조선전선 2척이 합세하여 안위의 전선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런데 안골포 해전시 항복한 왜병 준사란 자가 배위에서 왜장 마다시가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발견, 이순신은 즉각 그를 잡아 목을 베어 왜군에게 보이니 왜군들은 전의를 상실하여 뒤로 물러섰다. 이때를 잡아 조선군은 밀려들어가는 조류를 타고 일제히 돌격하여 왜선 31척을 격파, 왜군 수군장 10여명의 목을 베었다.

왜선 200여척 중 직접 명량해협에 들어온 배는 4개 제대로 133척 이었으며, 1개 제대는 약 30척이었다. 이들 선봉 1개 제대의 31척은 이렇게 이순신에게 격파되었고 나머지 100여 척은 싸워보지 못한채 무참히 격파되는 왜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참패한 왜군은 웅천 방면으로 도망갔고 이순신은 적의 야습을 피하고 부대를 재정비 하기위해 당사도로 진을 옮겼다.





3. 병법



ㆍ병법상의 논리를 극복하다

13척의 전선으로 무려 133척의 전선을 상대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손자병법 모공편에는 전력을 계산하여 현명하게 전투해야한다고 나와있다. 적보다 10배 정도면 포위공격이 가능하고, 만약 매우 열세하면 능피 피해야 한다. 피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결국 대군의 포로가 된다고 했다.

조선전선과 왜선의 전력비가 10배 이상 차이나니 왜선으로서는 충분히 포위로 공격이 가능하며 이를 상대하여 끝까지 버틴다고 하면 포로가 되는 병법상의 논리이지만, 이순신은 이것을 극복해냈다.




















ㆍ지리이용

명랑해전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올돌목'. 이순신은 1591년 2월 초, 임진왜란 발발 1년전에 근처 진도 군수로 임명되었었는데 진도읍에 가기 위해 명량 나룻배로 이 울돌목을 건너가게 되다 이 울돌목의 특이한 지형과 조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명랑해전을 앞두고 이곳을 전장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왜군을 울돌목 입구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순신은 15일간 적극적인 유인작전을 감행했고, 왜군은 이에 속아 조선수군을 따라 울돌목 입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울돌목의 조류현상에 대해 완벽히 파악한 이순신은 왜선이 울돌목을 넘어오기 전에 그 시간대에는 밀물이어서 노젓기가 힘들었지만 진을 옮겨 울돌목 입구까지 나아가 왜선을 맞았고, 그 이후 전투가 개시되자 썰물을 기다려 상황을 진전시키다가 총공격으로 왜선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울돌목의 좁은 수로와 조류를 십분 이용한 완벽한 승리였다.

※ 울돌목 조류를 이용한 이순신
양안에 돌출한 암초를 울돌이라 했고, 120m밖에 안되는 너비의 명량해협의 가장 좁은 목을 울돌목이라고 불렀는데, 이순신은 불과 120m폭에 13척의 전선을 옆으로 전개시키고 닻을 내려 북서류의 흐름에 의해 뒤로 밀려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때 시각이 약 오전 8시 ~ 8시 30분경이니 약 1시간 후면 최대 유속의 북서류가 되어 역류에 정박이 어려웠다.

왜선이 울돌목에 도착한 시간은 약 12시경으로서 남동류의 바뀌는 시각이 12시 48분이므로 왜선은 아직 순조롭게 이순신전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순신 전선은 약 8시 30분 경에 울돌목에 도착하여 왜선이 도착한 12시까지 약 3시간 30분에 닻을 내려 역류에 견뎌냈다. 이순신은 조류가 바뀌는 12시 48분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12시 조금 넘은 시각에 전투를 개시했을 것이다.

ㆍ'급소'공격

손자병법 허실편에 '공기소필구' 라는 말이 있다. 공격을 하되 적이 반드시 구하지 않으면 안될 곳을 택한다는 뜻인데, 즉 적의 중심을 택하여 치명타를 주어 전세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순신은 왜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울돌목 지역을 택하였고 철저히 이를 격파함으로써 왜의 육군에 대한 보습선을 잘라 왜군 전세와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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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로써 다수를 상대하여 승리한 예가 몇몇 있지만, 무려 10 : 1 이상의 전력차이로 승리한 예는 드물다. 클라우제비츠는 "가장 좋은 전략은 우선은 전체적으로, 그 다음은 결정적 지점에서 언제나 매우 강력한 것 이다."고 했고, 슐리펜은 "만약 전체를 공격하기에 너무 열세라면 결정적인 한 부분을 집중고격해야 승리할 수 있다." 고 했다.

이순신은 먼저 적의 결정적인 지점으로 집주공격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했다. 소수로써 다수를 이기는 것은 대단히 희박한 승산이었다.





4. 마지막으로



이 명랑해전 말고도 그의 업적과 전략,전술에 관해 칭찬할 것은 한두 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해군사에서 이순신은의 업적은 크게 인정받고 있다.

이순신의 해전사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후 많은 전략·전술가들이 그의 위업에 최상급의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국의 해군 중장 밸러드(G.A. Ballad)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한다. 밸러드는 그의 저서에서 한산해전을 평가하여 말하기를

“이 해전으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려던 야망은 급속히 끝을 맺었다. 이것은 위대한 조선의 제독이 세운 빛나는 전공 때문이었다.불과 6주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는 전 세계해전사상 유례가 없는 연전연승의 전공을 세웠다.그는 적의 전투함대를 여지없이 파멸시켰고, 적의 병참을 차단하고, 적의 수송선단을 소탕하여 육전에서 이기고 있는 적 지상군의 태세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적의 야심에 찬 계획을 완전히 괴멸시켰다.

넬슨(Nelson), 블레이크(Blake)라 할지라도 자주 잔혹한 외국의 압제를 받아왔던 아주 조그마한 나라에서 태어난 그리고 외국에는 전혀 알려 져 있지 않은 이 지휘관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었다.이순신 제독이 그의 조국 밖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실로 유감된 일이다"

라고 이순신을 세계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제독으로 기술하고 있다.그리고 1904년에 있었던 러.일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여 일본을 구한 일본 근대 해군의 명장, 동향평팔랑(東鄕平八郞)이 창안했다는 정자(丁字)전법은 기실 이순신의 학익진법의 모작이었다.

이 전법의 효과는 설정된 목표에 일시에 집중포격을 가하여 함포의 명중율을 높여 적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히는 것인 데 이는 곧 이순신의 학익진을 이용한 일제집중다방전법(一齊集中打方戰法),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그리고 이 정자 전법은 글자의 모양을 따라 T자형 전법으로 서방 세계에 소개되어 세계 제 2차대전 때까지 근세해전의 주전법이 되어 왔다
등록일 : 20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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